진화심리는 파라다임
SocialBrain/진화심리 :
2010/01/25 12:22
제가 진화심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도덕심리의 새 지평을 연 조나단 하이트 교수를 통해서였습니다. 이 블로그에 여러차례 소개했던 분입니다. 제게 큰 영향을 미친 "선생님"이니까요.
하이트 교수의 대표이론이 Moral Foundations Theory입니다. 진화심리의 틀로 만들어낸 이론입니다. 여기서 진화심리가 무엇인지 감 잡으셔야 합니다. 진화심리는 심리학의 분과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틀입니다.
"심리"라는 단어 앞에 "진화"가 붙어 있어, 인지심리, 사회심리처럼, 진화심리가 심리학의 여러 분과학문 중 하나라고 오해할만도 합니다.
흔히 진화심리를 비판하며 "검증할 수 없는 이론"이라고 하는데, 이는 진화심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진화심리"라는 이론이 있는게 아니라, 진화심리라는 틀로 개발한 이론이 있는 것이지요.
진화심리는 "파라다임"입니다.
파라다임은 "사고의 틀," 혹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즉, 진화심리는 진화라는 사고의 틀로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는 접근방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심리학뿐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언어학 철학 등 거의 모든 학문을 진화의 틀로 접근할수 있습니다.
진화심리라는 파라다임을 적용해 알지 못하던 것을 밝혀낸 사례는 많습니다. 2세대 긍정심리학자인 바바라 프레드릭슨 교수의 "넓히고 짓는 이론 (The Broaden-and-Build Theory)"이 좋은 예입니다. 프레드릭슨 교수 이전에는 "기분 좋으면 좋으니까 좋은거지 뭐"에 머물렀습니다. "좋으면 좋은 것이다"를 전제로 동기부여, 행동변화와 같은 심리현상을 연구했죠.
어느 누구도 이 전제조건에 대해 의문을 달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좋으면 좋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수 있으니까요. 물론 또 다른 한편으론 대단히 어려운 질문이었다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원래, 아주 뻔한 것에 대한 이유를 찾는게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프레드릭슨 교수는 "기분좋은 것은 뭐가 좋은거지 (What good is feeling good)"하며 이 너무도 뻔한 질문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과학하는 사람의 기본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니 종교와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과학자가 피식 웃으며, "과학하는 것은 의심하는 것인디"라고 했답니다.)
프레드릭슨 교수는 "장기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에 보상이 주어지고, 보상이 주어지는 것에 즐거움이 따른다"는 진화심리의 관점에서 즐거움을 분석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분 좋은 것은 어떻게 생존과 번식에 유익한 것일까요?
프레드릭슨에 따르면, 기분 좋은 것은 단지 기분 나쁜게 아닌 상태가 아닙니다. 기분 나쁜 상태는 무엇인가 경계하거나, 대비하고, 긴장해서,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기분 나쁜 상태는 생존을 위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기분 좋은 상태는 바로 나쁜 상황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undo) 역할을 합니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마음을 넓히고 (broaden mind) 심리적 힘을 기르는 (build psychological strengths) 역할을 합니다.
진화심리의 틀로 선(virtue)의 생물학적 근거를 찾는 노력도 활발합니다. 그중 한 예가 심장박동변이(Heart rate variability)와 동정심과의 관계를 분석한 것입니다. 심장이란 단어에서 心은 "마음 심"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이 심장에 있었다고 본것이지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조금 발전되면서, 옛 사람들의 무지를 탓했지만, 그 이해가 조금 더 발전하고 보니, 선현들의 지혜가 보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할수 있지요.
심장박동변이와 동정심이 연계되는 이유는 심장박동 조절에 관여하는 미주신경(vagus nerve)의 역할때문입니다.
동정심을 느끼려면, 다른 사람의 슬픔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슬픔을 느끼는 과정에서 슬픔이란 고통을 적당한 수준에서 조절하지 못하면, 남의 고통이 그대로 나의 고통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누기보다 피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선함은 일종의 능력이라 할수 있습니다.) 감정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미주신경이고, 심장박동변이는 감정조절의 지표로 사용됩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라는 말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줄 압니다. 몸과 마음을 구분한 사고방식을 반영한 말입니다. 오류입니다. 이를 콕 짚어낸 다미시오의 "데카르트의 오류(Descartes' error)"라는 역작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이 책을 계기로 몸과 마음을 통합적으로 연구하게 됐습니다.
안타까운 현상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데카르트식 이원적 사고 (Cartesian Dualism)에 갖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엔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여기는 사람도 꽤 됩니다.
하이트 교수의 대표이론이 Moral Foundations Theory입니다. 진화심리의 틀로 만들어낸 이론입니다. 여기서 진화심리가 무엇인지 감 잡으셔야 합니다. 진화심리는 심리학의 분과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틀입니다.
"심리"라는 단어 앞에 "진화"가 붙어 있어, 인지심리, 사회심리처럼, 진화심리가 심리학의 여러 분과학문 중 하나라고 오해할만도 합니다.
흔히 진화심리를 비판하며 "검증할 수 없는 이론"이라고 하는데, 이는 진화심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진화심리"라는 이론이 있는게 아니라, 진화심리라는 틀로 개발한 이론이 있는 것이지요.
진화심리는 "파라다임"입니다.
파라다임은 "사고의 틀," 혹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즉, 진화심리는 진화라는 사고의 틀로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는 접근방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심리학뿐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언어학 철학 등 거의 모든 학문을 진화의 틀로 접근할수 있습니다.
진화심리라는 파라다임을 적용해 알지 못하던 것을 밝혀낸 사례는 많습니다. 2세대 긍정심리학자인 바바라 프레드릭슨 교수의 "넓히고 짓는 이론 (The Broaden-and-Build Theory)"이 좋은 예입니다. 프레드릭슨 교수 이전에는 "기분 좋으면 좋으니까 좋은거지 뭐"에 머물렀습니다. "좋으면 좋은 것이다"를 전제로 동기부여, 행동변화와 같은 심리현상을 연구했죠.
어느 누구도 이 전제조건에 대해 의문을 달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좋으면 좋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수 있으니까요. 물론 또 다른 한편으론 대단히 어려운 질문이었다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원래, 아주 뻔한 것에 대한 이유를 찾는게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프레드릭슨 교수는 "기분좋은 것은 뭐가 좋은거지 (What good is feeling good)"하며 이 너무도 뻔한 질문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과학하는 사람의 기본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니 종교와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과학자가 피식 웃으며, "과학하는 것은 의심하는 것인디"라고 했답니다.)
프레드릭슨 교수는 "장기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에 보상이 주어지고, 보상이 주어지는 것에 즐거움이 따른다"는 진화심리의 관점에서 즐거움을 분석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분 좋은 것은 어떻게 생존과 번식에 유익한 것일까요?
프레드릭슨에 따르면, 기분 좋은 것은 단지 기분 나쁜게 아닌 상태가 아닙니다. 기분 나쁜 상태는 무엇인가 경계하거나, 대비하고, 긴장해서,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기분 나쁜 상태는 생존을 위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기분 좋은 상태는 바로 나쁜 상황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undo) 역할을 합니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마음을 넓히고 (broaden mind) 심리적 힘을 기르는 (build psychological strengths) 역할을 합니다.
진화심리의 틀로 선(virtue)의 생물학적 근거를 찾는 노력도 활발합니다. 그중 한 예가 심장박동변이(Heart rate variability)와 동정심과의 관계를 분석한 것입니다. 심장이란 단어에서 心은 "마음 심"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이 심장에 있었다고 본것이지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조금 발전되면서, 옛 사람들의 무지를 탓했지만, 그 이해가 조금 더 발전하고 보니, 선현들의 지혜가 보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할수 있지요.
심장박동변이와 동정심이 연계되는 이유는 심장박동 조절에 관여하는 미주신경(vagus nerve)의 역할때문입니다.
동정심을 느끼려면, 다른 사람의 슬픔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슬픔을 느끼는 과정에서 슬픔이란 고통을 적당한 수준에서 조절하지 못하면, 남의 고통이 그대로 나의 고통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누기보다 피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선함은 일종의 능력이라 할수 있습니다.) 감정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미주신경이고, 심장박동변이는 감정조절의 지표로 사용됩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라는 말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줄 압니다. 몸과 마음을 구분한 사고방식을 반영한 말입니다. 오류입니다. 이를 콕 짚어낸 다미시오의 "데카르트의 오류(Descartes' error)"라는 역작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이 책을 계기로 몸과 마음을 통합적으로 연구하게 됐습니다.
안타까운 현상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데카르트식 이원적 사고 (Cartesian Dualism)에 갖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엔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여기는 사람도 꽤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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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이기적유전자를 보다 궁금한게 있어 질문드립니다.
인간은 마음이라는 것이 있어, 행동에 뚜렷한 동기(행복)가 존재하지만,
식물, 세포, 바이러스...같은 마음이 있다고 보기 힘든 생명체는..
행동에 어떤 동기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식물, 세포, 바이러스 같은 생명체들은,
어떤 것이 동기가 되어 그렇게 생존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일까요?
도킨스는 유전자는 유전자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가진다고 하는데,
마음도 없는 유전자가 왜 그런 목적을 가지는지 궁금하네요
유전자에겐 사람의 마음의 작용같은 동기가 없습니다. 바이러스에도 동기가 있다고 할수 없지요. 굳이 식물, 세포, 바이러스에도 "동기"와 같은 작용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생존하기 위한 작용을 말하다고 보면 될듯합니다.
도킨스만큼 동료학자로부터 많은 욕을 먹은 학자도 드물겁니다. 좋은 내용의 책에 제목을 "이기적"유전자라고 달았기 때문이지요. 비판의 요지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위에 말씀드린대로, 유전자에 "동기"가 있는것처럼 묘사했기 때문이고요. 둘째는 책에 "이기적"이라는 제목을 달아,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의 세계라는 틀로 보도록 했다는 것이지요. 이점에 대해 도킨스 스스로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책 제목을 다시 단다면 "이기적 유전자, 이타적 개체"라고 하고 싶다고 했지요.
위에 글에서 말씀하신 심장박동 변이와 동정심이 연계되는 이유에 대해 조금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수는 없는지요,,(좋은 글 이렇게 공개해주셔서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 글을 올릴예정입니다. Keltner교수의 저서 "Born to be Good"을 보셔도 됩니다. 저도 Keltner교수의 연구를 통해 습득한 지식이니까요.
감사합니다..!! 올리신다는 글 기대되네요!!
안녕하세요?
한가지 질문이있어서 글을 남깁니다.
제가 제프리밀러의 메이팅마인드를 읽다가 혈연,호혜주의와 관련없는 이타적행위-자선단체에 기부, 적선 행위-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혹시 이것에 대한 책을 아시면 추천부탁드립니다. ^.^
좋은하루 되세요 !
밀러의 신작 Spent가 이타적 행위를 현시적 소비에 연결지은 것이고요, 이타적 행위에 대해선 Keltner의 Born to be Good이 있습니다.
참고로, 도킨스가 서문을 단 [협력의 진화]가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