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우파의 심리
SocialBrain/진화심리 :
2010/01/24 09:26
(강남좌파와 아이폰과 연결된 글입니다.)
강남좌파에 대한 글은 민노씨의 "강남좌파의 시골우파"에 대한 글을 읽고나서였습니다. "강남좌파" 혹은 "시골우파"라는 용어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강남과 좌파, 시골과 우파라는 용어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겐 일관성을 추구하는 욕구와 인지에 대한 욕구 (Need for cognition)가 있어, 뭔가 살짝 틀어지는 것에는 항상 주의를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이런게 종종 오락의 요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광고기법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강남좌파와 아이폰에서 강남좌파에 대한 글을 썼으니, 이제 시골우파를 다룰 차례이군요.
시골과 보수성
여기서 주목해야할게 마음의 작용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숫자같은 것을 따져 이해관계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직관적으로 판단합니다. 특히 도덕적 직관이 중요합니다. 수백만년간 수많은 죽을고비 넘기고 넘기고 또 넘기는 과정에서 인류가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고, 21세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도덕적 직관때문입니다. 이 직관대로 움직인 개체와 그 자손들이 살아남고 번성했습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도덕판단은 이성적 추론이라고 여겼지만, 인간의 지식의 양이 늘고, 질이 좋아지면서, 도덕판단은 직관이 더 본질적이란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도덕판단이 직관이란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게 역겨움과의 관련성입니다. 역겨움은 이성적 추론과 거리가 멉니다. 채식주의와는 "이성적으로" 담을 쌓은 사람도 도축장에서 도살하는 장면보면 최소한 몇주일은 채식주의자 됩니다. 역겨움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역겨움의 작용이 그동안 고상하다고 여겼던 도덕과 직결돼 있습니다.
역겨움이 도덕과 관련되는 이유는 인류와 병균과의 전쟁때문입니다. 역겨움은 바로 병원균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상한 고기에는 병균이 득실하겠죠. 상한고기를 보면, "저 고기 먹으면 배탈나서 잘못하면 죽어"라는 생각을 해서 상한고기를 피하는게 아닙니다. 역겨움 때문에, 만지기도 싫은 느낌이 "자동으로" "생각없이" 드는겁니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이 생존이라 할때, 인류가 21세기에도 치열하게 생존을 걸고 전쟁을 벌이는 대상이 병균입니다. 어떤 병균은 포유류와 적절한 공존을 모색하지만, 끊임없이 진화하며 포유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병균도 있습니다.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신종플루나, 광우병 소동 역시 병균과의 전쟁이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생존과 직결되는 현재진행형의 문제이기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광우병 파동이 보수적인 직관때문이란 것은 참 역설적입니다. 그런데, 한꺼풀 들쳐보면, 그럴만도 합니다. 광우병파동의 원인이 외부물질(수입소)을 자유롭게 들여오도록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자유무역협정은 엄밀하게 보면 보수적인 정책이라기 보다 진보적인 정책이라 할수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점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병균과의 전쟁에서 안전판은 "우리끼리 하던대로" 전략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하던대로 살면, 적대적 병균에 노출될 확률이 크게 줄어듭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한 병균 (즉, 면역이 있는)하고만 살면 되니까요. 그런데, 타지인은 현지인에게는 면역이 없는 병균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병균중엔 그 지역사람을 몰살시킬만큼 치명적인 것도 있을수 있고요. 이런 이유로 세계화가 인류생존의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아래 TED에서 인류와 병균과의 치열한 전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외부인과 접촉이 많지 않아 면역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 특히, 외부에서 들여오는 것에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거부감을 지니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두려움, 거부감이 도덕판단을 통해 작용합니다. 즉, 다양성을 통해 면역성을 키우지 못한 사람들은 외부에서 도입된 것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시보다는 사람이 적은 시골인들의 병균면역성이 떨어집니다. 그만큼 도시인들보다 시골인들이 상대적으로 병균에 취약하다는 것이고, 이는 보수적 성향으로 연결됩니다. 실제로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이는 교역의 중심지가 진보적이고, 다양성이 떨어지는 지역의 사람들이 보수적입니다.
한국사회에 보수적 성향이 뿌리깊은 이유는 식민지와 전쟁경험을 통해 상당히 오랫동안 병균에 취약한 상태에 놓였있던 상황과 연결지을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은 1980년대이후 미국에서 보수주의가 우세했던 원인을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연결짓는 설명과 대체로 일치합니다.
빈곤과 보수성
시골우파란 용어에서 시골은 "도시로 떠나온 사람들의 고향"이란 의미가 아니라,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개발이 덜돼 상대적으로 빈곤한 곳을 말하겠지요. 빈곤이란 측면에서 "달동네 우파"란 용어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가지 않는 현상이 선거결과일겁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훨씬 많은데 왜 종종 부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이길까하는 것입니다.
복지예산 혜택받는 사람들이 복지예산 깍을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현상은 언듯 논리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여기에는 "불확실성"과 보수와의 관계가 고려돼야합니다. 불확실성은 불안감이나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조장합니다. 불안할 때 취하는 생존전략은 두가지입니다. "남들 하는대로", "기존에 하던대로"입니다. 달리 말해 보수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변화를 모색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일단 어느정도 안정돼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먹고 사는데 급급한 사람들이 진보적이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심리를 통해 잘드러납니다.
빨간색은 보수적인 색입니다. 대표적인 보수언론이 조선일보의 색이 빨간색인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파란색은 진보적인 색이고요. 진보성향의 경향신문이 파란색을, 한겨레가 녹색을 사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진보적인 사람을 "빨갛다"고 하는 "좌빨"은 형용모순이라 할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빨"이 정확한 용어법입니다. MBC의 로고에서 빨간색을 문제삼아 결국 없애도록 하면서, 조선일보 빨간색은 문제삼지 않는 현상도 모순이지요. MBC가 보수적이지도 않기에 보수적인 빨간색을 쓰지 않도록 한것이라면 대단히 논리적이라 할수 있겠네요.)
사람들이 빨간색을 접하면 위험회피동기가 작동해, 남들하는 대로, 기존에 하던대로 하던것을 하려합니다. 세세한 것, 정확한 것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흐음, 그런데, 이 대목이 조금 낯익지 않은지요? 위에서 병균과의 전쟁을 말하면서 보수적인 사람들이 낯선 것을 경계한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파랑색에 접할 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즉, 진보적이고) 창의적이 됩니다. 파란색은 개방과 평온의 색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일단 안전이 확보된 다음 문제란 것입니다.
그런데, 빈곤층이 변화를 추구할 때도 있습니다. 기존에 하던대로 해서는 도저히 먹고 살수 없는 상황에 몰려있을 때입니다. 즉, 빈곤층이 변화를 추구할 정도의 사회는 갈데까지 간 사회라 할수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빈곤층이 기존에 하던대로 도저히 먹고살수 없는 지경에 몰려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빈곤층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지금 사는게 팍팍해도 도저히 살수 없는 지경이 아니라면 "하던대로"를 선택하게 됩니다. 보수란게 바로 "하던대로"하자는 것입니다.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보정권은 조금만 잘못해도 정권을 잃지만, 보수정권은 어지간히 잘못하지 않아서는 표를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정치를 잘못해 사회가 망하지 않을정도로 불확실성을 유지하는게 보수정권의 유지에 도움이 될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죽지 않을정도로 피폐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도 보수정권의 유지방법이 될수 있다는 것이지요. (북한이 이런 방식으로 대단히 성공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지요. 공산주의가 늘 진보는 아닙니다. 북한을 고립, 압박해, 북한주민들이 불확실성에 시달리도록 하는게 북한 정권 유지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크다할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의 전략은 어떤 방식이 돼야 할까요?
사회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 될지는 고민을 해야겠지만, 한가지 짚을게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몸싸움하는 상황은 진보진영의 정권창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국회가 난장판이 되면 될수록 사회의 불확실성이 올라라고, 그만큼 사람들은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보진영이 저소득층의 표를 구한다면, 정책은 진보적이라도, 행동은 보수적인 면모를 보여줘야 합니다. 다음 기회에 다루겠지만, "평등"도 보수적인 저소득층의 표를 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구호가 아닙니다.
강남좌파에 대한 글은 민노씨의 "강남좌파의 시골우파"에 대한 글을 읽고나서였습니다. "강남좌파" 혹은 "시골우파"라는 용어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강남과 좌파, 시골과 우파라는 용어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겐 일관성을 추구하는 욕구와 인지에 대한 욕구 (Need for cognition)가 있어, 뭔가 살짝 틀어지는 것에는 항상 주의를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이런게 종종 오락의 요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광고기법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강남좌파와 아이폰에서 강남좌파에 대한 글을 썼으니, 이제 시골우파를 다룰 차례이군요.
시골과 보수성
여기서 주목해야할게 마음의 작용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숫자같은 것을 따져 이해관계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직관적으로 판단합니다. 특히 도덕적 직관이 중요합니다. 수백만년간 수많은 죽을고비 넘기고 넘기고 또 넘기는 과정에서 인류가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고, 21세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도덕적 직관때문입니다. 이 직관대로 움직인 개체와 그 자손들이 살아남고 번성했습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도덕판단은 이성적 추론이라고 여겼지만, 인간의 지식의 양이 늘고, 질이 좋아지면서, 도덕판단은 직관이 더 본질적이란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도덕판단이 직관이란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게 역겨움과의 관련성입니다. 역겨움은 이성적 추론과 거리가 멉니다. 채식주의와는 "이성적으로" 담을 쌓은 사람도 도축장에서 도살하는 장면보면 최소한 몇주일은 채식주의자 됩니다. 역겨움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역겨움의 작용이 그동안 고상하다고 여겼던 도덕과 직결돼 있습니다.
역겨움이 도덕과 관련되는 이유는 인류와 병균과의 전쟁때문입니다. 역겨움은 바로 병원균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상한 고기에는 병균이 득실하겠죠. 상한고기를 보면, "저 고기 먹으면 배탈나서 잘못하면 죽어"라는 생각을 해서 상한고기를 피하는게 아닙니다. 역겨움 때문에, 만지기도 싫은 느낌이 "자동으로" "생각없이" 드는겁니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이 생존이라 할때, 인류가 21세기에도 치열하게 생존을 걸고 전쟁을 벌이는 대상이 병균입니다. 어떤 병균은 포유류와 적절한 공존을 모색하지만, 끊임없이 진화하며 포유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병균도 있습니다.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신종플루나, 광우병 소동 역시 병균과의 전쟁이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생존과 직결되는 현재진행형의 문제이기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광우병 파동이 보수적인 직관때문이란 것은 참 역설적입니다. 그런데, 한꺼풀 들쳐보면, 그럴만도 합니다. 광우병파동의 원인이 외부물질(수입소)을 자유롭게 들여오도록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자유무역협정은 엄밀하게 보면 보수적인 정책이라기 보다 진보적인 정책이라 할수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점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병균과의 전쟁에서 안전판은 "우리끼리 하던대로" 전략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하던대로 살면, 적대적 병균에 노출될 확률이 크게 줄어듭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한 병균 (즉, 면역이 있는)하고만 살면 되니까요. 그런데, 타지인은 현지인에게는 면역이 없는 병균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병균중엔 그 지역사람을 몰살시킬만큼 치명적인 것도 있을수 있고요. 이런 이유로 세계화가 인류생존의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아래 TED에서 인류와 병균과의 치열한 전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외부인과 접촉이 많지 않아 면역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 특히, 외부에서 들여오는 것에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거부감을 지니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두려움, 거부감이 도덕판단을 통해 작용합니다. 즉, 다양성을 통해 면역성을 키우지 못한 사람들은 외부에서 도입된 것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시보다는 사람이 적은 시골인들의 병균면역성이 떨어집니다. 그만큼 도시인들보다 시골인들이 상대적으로 병균에 취약하다는 것이고, 이는 보수적 성향으로 연결됩니다. 실제로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이는 교역의 중심지가 진보적이고, 다양성이 떨어지는 지역의 사람들이 보수적입니다.
한국사회에 보수적 성향이 뿌리깊은 이유는 식민지와 전쟁경험을 통해 상당히 오랫동안 병균에 취약한 상태에 놓였있던 상황과 연결지을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은 1980년대이후 미국에서 보수주의가 우세했던 원인을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연결짓는 설명과 대체로 일치합니다.
빈곤과 보수성
시골우파란 용어에서 시골은 "도시로 떠나온 사람들의 고향"이란 의미가 아니라,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개발이 덜돼 상대적으로 빈곤한 곳을 말하겠지요. 빈곤이란 측면에서 "달동네 우파"란 용어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가지 않는 현상이 선거결과일겁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훨씬 많은데 왜 종종 부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이길까하는 것입니다.
복지예산 혜택받는 사람들이 복지예산 깍을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현상은 언듯 논리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여기에는 "불확실성"과 보수와의 관계가 고려돼야합니다. 불확실성은 불안감이나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조장합니다. 불안할 때 취하는 생존전략은 두가지입니다. "남들 하는대로", "기존에 하던대로"입니다. 달리 말해 보수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변화를 모색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일단 어느정도 안정돼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먹고 사는데 급급한 사람들이 진보적이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심리를 통해 잘드러납니다.
빨간색은 보수적인 색입니다. 대표적인 보수언론이 조선일보의 색이 빨간색인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파란색은 진보적인 색이고요. 진보성향의 경향신문이 파란색을, 한겨레가 녹색을 사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진보적인 사람을 "빨갛다"고 하는 "좌빨"은 형용모순이라 할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빨"이 정확한 용어법입니다. MBC의 로고에서 빨간색을 문제삼아 결국 없애도록 하면서, 조선일보 빨간색은 문제삼지 않는 현상도 모순이지요. MBC가 보수적이지도 않기에 보수적인 빨간색을 쓰지 않도록 한것이라면 대단히 논리적이라 할수 있겠네요.)
사람들이 빨간색을 접하면 위험회피동기가 작동해, 남들하는 대로, 기존에 하던대로 하던것을 하려합니다. 세세한 것, 정확한 것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흐음, 그런데, 이 대목이 조금 낯익지 않은지요? 위에서 병균과의 전쟁을 말하면서 보수적인 사람들이 낯선 것을 경계한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파랑색에 접할 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즉, 진보적이고) 창의적이 됩니다. 파란색은 개방과 평온의 색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일단 안전이 확보된 다음 문제란 것입니다.
그런데, 빈곤층이 변화를 추구할 때도 있습니다. 기존에 하던대로 해서는 도저히 먹고 살수 없는 상황에 몰려있을 때입니다. 즉, 빈곤층이 변화를 추구할 정도의 사회는 갈데까지 간 사회라 할수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빈곤층이 기존에 하던대로 도저히 먹고살수 없는 지경에 몰려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빈곤층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지금 사는게 팍팍해도 도저히 살수 없는 지경이 아니라면 "하던대로"를 선택하게 됩니다. 보수란게 바로 "하던대로"하자는 것입니다.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보정권은 조금만 잘못해도 정권을 잃지만, 보수정권은 어지간히 잘못하지 않아서는 표를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정치를 잘못해 사회가 망하지 않을정도로 불확실성을 유지하는게 보수정권의 유지에 도움이 될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죽지 않을정도로 피폐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도 보수정권의 유지방법이 될수 있다는 것이지요. (북한이 이런 방식으로 대단히 성공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지요. 공산주의가 늘 진보는 아닙니다. 북한을 고립, 압박해, 북한주민들이 불확실성에 시달리도록 하는게 북한 정권 유지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크다할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의 전략은 어떤 방식이 돼야 할까요?
사회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 될지는 고민을 해야겠지만, 한가지 짚을게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몸싸움하는 상황은 진보진영의 정권창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국회가 난장판이 되면 될수록 사회의 불확실성이 올라라고, 그만큼 사람들은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보진영이 저소득층의 표를 구한다면, 정책은 진보적이라도, 행동은 보수적인 면모를 보여줘야 합니다. 다음 기회에 다루겠지만, "평등"도 보수적인 저소득층의 표를 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구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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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아 주세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 )
몇가지 지적들은 참 탁월하네요.
특히 말미에 주신 "진보진영이 저소득층의 표를 구한다면, 정책은 진보적이라도, 행동은 보수적인 면모를 보여줘야 합니다."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다음에 이어주신다 하신 "평등"이라는 구호와 저소득층의 표심과의 관계도 기대가 됩니다. 미리 좀 여쭤보면 냉정한 이기적 합리성에 바탕한 이성 판단이 아닌 욕구 지향의 모방심리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루실 예정이신지요?
부끄럽습니다. ^^;
도덕심리의 관점에서 다룰려고요. 왜 "공평"이 훨씬 더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이 될겁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우클릭 금지가 설정돼 있었군요. 해제했습니다. 초기에 설정해 놓은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가 처음부터 이런 모양의 것이 아니었거든요. 꾸준한 진화의 결과라고나 할까요. 덕분에 한차례 더 진화했습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시골 사람들이 면역성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사람이 적다는 점을 드셨는데, 그렇다면, 아토피, 알러지 등 시골에서 발생하지 않는 도시질환 - 위생가설 - 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런지요. 그리고 도시 사람들 사이에 팽배한 (과도한) 위생관념 덕분에 질병에 대한 공포는 시골 사람보다 도시 사람들에게 더 크지 않을까요? 일례로 시골 식당 설거지 상태라든가, 오랜만에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간 도시의 어린 손녀가 더럽다며 삼가는 시골 음식 등을 꼽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진보/보수에 대해서 현상유지냐 변화지향이냐의 관점에서만 보시는 듯 한데, 표심에 대한 이야기이니 시장에 대한 태도나 성장-분배 등의 측면에서 진보/보수를 나누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경제적 [진보/보수]와 유지/변화 측면에서의 [진보/보수] 는 명사를 따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_- 완전히 다른 개념인데 왜 같은 명사를 쓰는지...)
도시와 시골중 어디에 병균의 종류가 많은지는 한번 조사해볼만합니다. 도시에 압도적으로 많지 않을까요?
과도한 위생관념이 보수적 성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맞습니다. 손을 씻는 행위만으로도 보수적 선택을 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인들은 더러운 것을 만지기 싫어하는 위생관념은 높을지 몰라도, 수많은 사람들 (무슨 병에 걸렸을지 모르는)이 내뱉은 공기를 밀폐된 공간 (예: 빌딩, 지하도, 대형몰)에서 들여마시는데는 별 위생관념을 발휘하지 않지요. 시골인들은 이런 밀폐된 공간을 불편해 합니다. 물론 의식적으로 병균을 생각해서는 아니고요.
진보/보수의 개념규정에 관한 점인데, 아주 좋은 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저는 분배를 지향한다 해서 진보라고 보지 않습니다. 공산주의가 항상 진보에 속하는게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중국공산당이 분배에서 성장으로 중심을 옮길 때 개혁한다고 했지요.
민노씨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타고 넘어왔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달동네우파'와 '시골우파' 등 재미있지만 뼈가 있는 단어들이 속출하네요.
오히려 '강남좌파'보다 훨씬 함축하는 바가 많은 거 같습니다.
특히 '역겨움'이라고 표현하신 '감성적 거부감'에 대한 대목이나
빈곤층의 변화에 대한 '거부감'에 대한 대목은 대단히 공감갑니다.
저는 이전에 '변화속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시골이나 '빈곤층'이라고 해도 '변화' 자체를 거부할 이유는 없고
다만 '변화속도'가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변화속도 체감'이 실제 '변화'와 차이가 나는 것>이야말로
좌파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했죠.
아마 주인장님께서 말씀하신 '안정감'이라는 표현과 연결되는 느낌이 듭니다.
주절주절 말이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p.s 다음에 말씀하신다는 '평등'은 '김우재님의 주장'과 통할 거 같은데
엄청 기대가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
"변화속도"도 고민해봐야할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