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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온

행복은 성취에 비례하고, 욕망에 반비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성취한게 아무리 많아도 욕망이 크면, 만족감을 느낄수 없을테니까요. 행복에 대한 해법 중 하나가, "욕망을 버려라"는 것인데, 문제는 그게 말처럼 되는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욕망이 있기에 인간이 생존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욕망을 줄이는 것과 인간의 본성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저 불행하게 살수밖에 없는 운명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욕망을 버릴수는 없지만, 다스릴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바하문트님(행복 = 성취 / 욕망(?))이 마광수 교수의 "삶을 비관하세요, 맘이 편해져요"를 비판하면서 행복과 욕망의 관계를 잘 정리했습니다. 아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 글에서 마 교수는 일종의 행복 방정식을 이렇게 제시한다.

    행복 = 성취 / 욕망

이렇게 해놓고 분자인 성취를 높이는 것보다 분모인 욕망을 줄이라고 충고한다. 이것도 실제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욕망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글을 읽을 까닭이 없다. 이런 글을 읽고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치솟는 욕망을 자기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리라. 이런 사람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어야 할까? 마 교수는 욕망이 행복과 반비례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욕망이 높아지는 걸 억제할 수 없다면 평생 불행하게만 살아야 할까?

물론 나도 답은 모른다. 하지만 사십 대 중반쯤 사니까 깨닫는 것은 있다. 욕망은 心包라는 것이다. 마음이 아니라 마음을 싸고 있는 것일 뿐이다. 살다보면 이 심포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 늘어나고 욕망의 질도 바뀌어 간다. 이제 욕망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동력이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따라서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욕망이 죽어간다는 것, 꿈이 사라진다는 것, 심지어 공상마저도 못하게 된다는 것.

행복과 성취, 욕망의 정의와 성질 자체를 자신만의 것으로 세우고 바꾸는 게 중요하지 성취나 욕망의 양을 조절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사실 마광수 교수와 바하문트님은 그리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분 다 행복의 핵심은 욕망을 다스리는데 있다고 간파했습니다. 다만, 바하문트님의 해법이 더 실용적인 이유는 욕망의 다스리는 방법이 욕망의 양을 조절하는데 있지 않고, 욕망의 질을 바꾸는데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욕망의 양을 줄이는 게 행복의 한 방법이란 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방법을 선택합니다. 7월 13일 보스턴 글로브가 보도한 신종마약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보스턴글로브에 따르면, 요즘 미국에서 "뜨는" 마약이 세로퀴얼 (Seroquel)로 알려진 쿼티아핀(Quetiapine)이라고 합니다. 정신분열증 같은 환자들의 정서안정에 쓰이는 약인데, 건강한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마약하면, 쾌감의 극대화가 생각날겁니다. 그런데, 쿼티아핀은 쾌감 극대화와 정반대의 기능을 합니다. 흔히 쾌락하면, 도파민을 떠올릴 것입니다. 뇌를 조금 더 아시는 분들은 이 도파민이 쾌락중추로 알려진 Nucleus Acumbens에서 분비된다는 것까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쿼티아핀은 도파민차단제입니다.

쾌락을 위해 비싼 돈 주고, 사먹는 불법 마약이 쾌락물질 차단제라는 것이지요. 언뜻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행복의 공식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도파민은 욕망의 물질입니다. 기대를 통해 쾌락으로 느끼게 해주거든요. 그런데, 욕망이 크면 클수록 행복은 멀어져만 갑니다. 쿼티아핀 사먹는 사람들은 행복공식대로, 도파민을 차단해 욕망을 줄여 행복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물론 쿼티아핀 중독성이 있고, 약물에 중독되면, 장기적으로 행복하게 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약품의 각종 부작용에 시달려야 합니다. 쿼티아핀의 부작용은 당뇨병이나 심혈관계통 질환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방법으로 욕망의 양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하면, 승려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분들은 욕망의 양을 줄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욕망의 질을 바꾸는 분들입니다.

욕망의 질을 바꾼다는 것은 욕망과 맞서 싸우지 말고, 욕망의 틀(Frame)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욕망의 틀을 바꾸고, 욕망의 질을 바꾸는 것에 대해, 다음 글에 올리겠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이미 이에 대한 해답을 알고 실천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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