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세면 행복해진다고?
SocialBrain :
2009/07/28 00:37
미국의 유명한 시사주간지 타임이 사고치고 말았습니다. "돈을 세면 행복해진다"고 말입니다. 지난 5월에 심리학학술지 심리과학(Psycholgocial Science)에 발표된 논문, "돈의 상징적 힘 (The symbolic power of money)"를 소개한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국내언론에서도 소개됐습니다.
"돈을 세면 행복해진다"는 제목이 왜 사고친 것에 해당하냐 하면, 연구의 내용을 지나치게 부풀렸기 때문입니다. 논문의 내용은 돈이 일종의 진통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이나 따돌림 등과 같은 사회적 고립에서 오는 고통을 돈이 어느 정도 완화시켜준다는 것입니다.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 같은 진통제 먹는다고 행복지지 않듯, 돈을 통한 고통의 일시적 완화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이 연구 저자들의 논문중엔 타이레놀같은 진통제가 사회적 고립에서 오는 고통을 완화시켜 준다는 것도 있습니다.)
이 연구의 의미는 (1) 데카르트식의 이원론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부정하면서, (2) 인간의 기본욕구는 사회적 욕구라는 것을 확인한 데 있습니다.
우선, 몸과 마음은 분리된게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고립처럼 순전히 마음과 관련된 것도 실은 몸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사회적 고립에서 느끼는 고통은 단지 상징적인게 아니라, 실질적인 육체적 고통으로 느낍니다. 역으로 사회적 고립이 초래한 "육체적" 고통을 돈이라는 상징만으로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의 기본욕구에 관한 것입니다. 흔히 욕구하면 (심리학을 조금 안다는 사람들 조차) 마슬로의 단계적 욕구를 떠올리지만, 인간의 욕구는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마슬로는 생리적 욕구 채우고, 안전욕구를 채운다음, 사회적 욕구, 자존 욕구, 자아실현 욕구 등이 낮은단계에서 높은 단계의 욕구를 추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잘 돌아보면, 인간의 욕구가 반드시 계층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생리적 욕구를 뒤로 하고 사회적 욕구나 자아실현 욕구를 추구하는 경우 얼마든지 있습니다. 잠을 자지 않고, 끼니 걸러가며 하고 싶은 것 하는 사람들 적지 않지요. 대표적인 생리욕구중 하나인 섹스를 자아실현욕구충족을 위해 기꺼이 마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학자들간 치열한 논쟁이 진행중인데, 이 연구는 사회적 욕구가 인간의 핵심욕구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이 연구의 일련의 실험에서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을 이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돈이 어떻게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을까요?
돈이 완충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고립이 고통이 되는 이유는 사회적 고립이 인간 개개인의 생존을 치명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다고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남기 참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바로 눈앞의 죽음을 앞둔 고통보다, 한달 후, 혹은 1년 후의 죽움을 앞둔 고통이 더 크지요. 그런데, 돈이 있으면 생존의 위협이 크게 줄어듭니다. 이런 까닭에 실제로 돈을 갖고 있지 않아도 돈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고립에서 오는 고통을 완화시킬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은 좋은 겁니다. 돈이 없으면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니까요. 돈이 없으면 행복해지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돈이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심리학자들이 최근 일관되게 밝혀낸 사실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가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서로 아껴주고 볼봐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으면,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은 부차적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은 완화시켜줄수 있지만, 행복을 줄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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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한달에 한 꼭지만 쓰려고 마음 먹었는데, 타임이 사고치는 바람에 때문에 결국 7월엔 한 꼭지 더 쓰고 말았습니다. 타임 때문만은 아니고, 김호님의 글도 이 글을 쓰는데 한 몫했습니다. 학술연구가 보도자료와 뉴스보도를 통해 어떻게 왜곡되는지 보여준 내용입니다.
저의 첫 직업이 뉴스를 전하는 일이었고, 지금은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복잡한 연구내용이 단순하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는 왜곡은 과학커뮤니케이션의 큰 문제입니다. 이 문제로 연구자들이 과학전문기자들을 호되게 비판했고, 이에 대한 언론인의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습니다. 기자 입장에선 연구자들이 현실 모르고 배부른 소리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과학언론을 "씹은" 연구자는 과학전문 블로그인 마인드핵의 보건인데, 지난 6월 영국런던에서 6차 세계과학전문기자회의가 열릴 때 보이코트까지 했습니다.
과학보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김호님 지적대로 닥블같은 전문가 블로그의 등장이 개선책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전문가 블로그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전문가 블로그의 글은 취재가 아닌, 한 개인의 지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의사나 자연과학자들 중에 사회현상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틀린 내용을 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전문가라는 이름 아래 그릇된 정보가 유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실력갖춘 전문기자가 제대로 취재해서 보도하는 관행이 자리잡는 것입니다. 한국이나 외국 언론이나 모두 크게 다를 바 없는 보도자료 베껴쓰기 관행부터 없어져야 하고요. (학술연구 결과를 보도할 때 언론인들이 대학당국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쓸수 밖에 없는 지식의 장벽이 존재하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올까요? 기자의 사명감? 제대로 쓴 과학기사 중엔 뉴욕타임즈에 많이 있습니다. 여러 학자들을 직접 취재해 씁니다. 가끔 뉴욕타임즈에도 과장된 내용이 나오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 뉴욕타임즈 경영이 참 힘들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과연 과학기사를 통해 얻으려는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인지, 신기한 읽을 거리인지 말입니다. 과학언론은 오락의 한 영역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란게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때도 있고요.
"돈을 세면 행복해진다"는 제목이 왜 사고친 것에 해당하냐 하면, 연구의 내용을 지나치게 부풀렸기 때문입니다. 논문의 내용은 돈이 일종의 진통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이나 따돌림 등과 같은 사회적 고립에서 오는 고통을 돈이 어느 정도 완화시켜준다는 것입니다.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 같은 진통제 먹는다고 행복지지 않듯, 돈을 통한 고통의 일시적 완화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이 연구 저자들의 논문중엔 타이레놀같은 진통제가 사회적 고립에서 오는 고통을 완화시켜 준다는 것도 있습니다.)
이 연구의 의미는 (1) 데카르트식의 이원론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부정하면서, (2) 인간의 기본욕구는 사회적 욕구라는 것을 확인한 데 있습니다.
우선, 몸과 마음은 분리된게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고립처럼 순전히 마음과 관련된 것도 실은 몸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사회적 고립에서 느끼는 고통은 단지 상징적인게 아니라, 실질적인 육체적 고통으로 느낍니다. 역으로 사회적 고립이 초래한 "육체적" 고통을 돈이라는 상징만으로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의 기본욕구에 관한 것입니다. 흔히 욕구하면 (심리학을 조금 안다는 사람들 조차) 마슬로의 단계적 욕구를 떠올리지만, 인간의 욕구는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마슬로는 생리적 욕구 채우고, 안전욕구를 채운다음, 사회적 욕구, 자존 욕구, 자아실현 욕구 등이 낮은단계에서 높은 단계의 욕구를 추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잘 돌아보면, 인간의 욕구가 반드시 계층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생리적 욕구를 뒤로 하고 사회적 욕구나 자아실현 욕구를 추구하는 경우 얼마든지 있습니다. 잠을 자지 않고, 끼니 걸러가며 하고 싶은 것 하는 사람들 적지 않지요. 대표적인 생리욕구중 하나인 섹스를 자아실현욕구충족을 위해 기꺼이 마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학자들간 치열한 논쟁이 진행중인데, 이 연구는 사회적 욕구가 인간의 핵심욕구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이 연구의 일련의 실험에서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을 이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돈이 어떻게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을까요?
돈이 완충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고립이 고통이 되는 이유는 사회적 고립이 인간 개개인의 생존을 치명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다고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남기 참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바로 눈앞의 죽음을 앞둔 고통보다, 한달 후, 혹은 1년 후의 죽움을 앞둔 고통이 더 크지요. 그런데, 돈이 있으면 생존의 위협이 크게 줄어듭니다. 이런 까닭에 실제로 돈을 갖고 있지 않아도 돈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고립에서 오는 고통을 완화시킬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은 좋은 겁니다. 돈이 없으면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니까요. 돈이 없으면 행복해지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돈이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심리학자들이 최근 일관되게 밝혀낸 사실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가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서로 아껴주고 볼봐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으면,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은 부차적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은 완화시켜줄수 있지만, 행복을 줄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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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한달에 한 꼭지만 쓰려고 마음 먹었는데, 타임이 사고치는 바람에 때문에 결국 7월엔 한 꼭지 더 쓰고 말았습니다. 타임 때문만은 아니고, 김호님의 글도 이 글을 쓰는데 한 몫했습니다. 학술연구가 보도자료와 뉴스보도를 통해 어떻게 왜곡되는지 보여준 내용입니다.
저의 첫 직업이 뉴스를 전하는 일이었고, 지금은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복잡한 연구내용이 단순하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는 왜곡은 과학커뮤니케이션의 큰 문제입니다. 이 문제로 연구자들이 과학전문기자들을 호되게 비판했고, 이에 대한 언론인의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습니다. 기자 입장에선 연구자들이 현실 모르고 배부른 소리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과학언론을 "씹은" 연구자는 과학전문 블로그인 마인드핵의 보건인데, 지난 6월 영국런던에서 6차 세계과학전문기자회의가 열릴 때 보이코트까지 했습니다.
과학보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김호님 지적대로 닥블같은 전문가 블로그의 등장이 개선책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전문가 블로그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전문가 블로그의 글은 취재가 아닌, 한 개인의 지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의사나 자연과학자들 중에 사회현상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틀린 내용을 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전문가라는 이름 아래 그릇된 정보가 유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실력갖춘 전문기자가 제대로 취재해서 보도하는 관행이 자리잡는 것입니다. 한국이나 외국 언론이나 모두 크게 다를 바 없는 보도자료 베껴쓰기 관행부터 없어져야 하고요. (학술연구 결과를 보도할 때 언론인들이 대학당국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쓸수 밖에 없는 지식의 장벽이 존재하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올까요? 기자의 사명감? 제대로 쓴 과학기사 중엔 뉴욕타임즈에 많이 있습니다. 여러 학자들을 직접 취재해 씁니다. 가끔 뉴욕타임즈에도 과장된 내용이 나오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 뉴욕타임즈 경영이 참 힘들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과연 과학기사를 통해 얻으려는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인지, 신기한 읽을 거리인지 말입니다. 과학언론은 오락의 한 영역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란게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때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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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실'보다는 그 사실 안팎에 있는 '이야기'가 대중에게는 더 매혹적이기 때문에 그런 실수들이 빈번하게 나오는 듯합니다. ‘사실’보다는 ‘이야기’를 생산해 내야 하는 대중 매체의 십자가도 무시 못할 부분인 듯하고요.

알려주신 논문,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야기" 덕에 대중매체가 "먹고 사는"는 측면도 있지요
저도 전문가들에 의해서 그릇된 정보가 유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 동감합니다.(본인의 전문 분야에서도 그릇된 정보를 유통시키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
그런 부분을 줄이기 위해서 닥블 모임에서 의학블로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중요한 초점으로 둔 것이 '공감과 소통'입니다.
잘못된 내용에 대한 지적을 수용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재생산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트랙백을 통해서 지적된 내용들을 확인하면서 얻게 되는 지식도 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논란이 될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근거를 제시하고 포스팅의 동기를 언급해서 back to source를 실천하는 것도 언급했습니다.
전문가 블로거나 기자나 자신의 자의적 해석과 사실을 구분해서 적어 놓기만 해도 정보의 왜곡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P.S.
제 경우는 정보 제공을 위한 포스팅을 할 때는 취재는 아니지만, 근거를 찾기 위한 전문 자료 검색을 하거나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포스팅을 통해서 내공이 꽤 좋아졌습니다...^^)
제대로된 정보가 재생산하는데, 잘못된 내용을 서로 지적하고 수용하는 풍토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닥블 모임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군요. ^^
과학언론의 본질은 오락이 아니었던가요?!
정말로 진지하게 사실로 받아들여서 중요한 의사결정에 사용하는 정보를 '신문'같은 곳에서 얻던가요?
디스커버리의 "Mythbusters"같은 쑈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과학 저널의 본질이었던 것 같았는데 말이지요. "Now let's blow up something anyway though it is irrelevant to today's myth, just because we like to blow up something!" 같은 느낌으로..
"Scientertainment"라는 용어가 흥미롭습니다.
정보라는 게 이미 생산자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여러 채널을 거치면서 해석에 해석을 거치다 보면, 왜곡의 의도가 없더라도 왜곡이 될 수 밖에 없는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정보 생산자의 책임 외에 소비자의 책임도 있다고 한다면, 헬스커뮤니케이터로서..책임 회피이겠지요?? 암튼..늘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그 흔적..트랙백으로 걸고 갑니다.
정답이란것은 없겠지만, 정답에 보다 가까운 것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트랙백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