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진정 창의적 인재를 원하나?
Mental Muscle :
2009/05/16 12:55
아래 삼각형과 사각형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삼각형이고, 어느 쪽이 사각형이라고 보십니까?

왼쪽이 삼각형, 오른쪽을 사각형이라고 보시는 분도 있고, 반대로 오른쪽이 삼각형, 왼쪽이 사각형이라고 보시는 분도 있을 줄 압니다. 같은 도형을 보는 데, 반응이 갈리는 것은 시야의 차이때문입니다. 세부적인 것 (item processing)을 보는 사람은 왼쪽 그림에서 사각형을 봅니다. 반면, 큰 그림(global processing)을 보는 사람은 세개의 사각형이 이룬 삼각형을 봅니다.
세부적인 것과 큰 그림 중 어느 것을 보게 되는 요인에는 기분, 색, 지위, 창의성 등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긍정적 기분일 때, 파란색일 때,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창의적일 때 큰 그림을 보게 되고, 부정적 기분 (분노 제외) 일 때, 빨간색일 때, 낮은 지위에 있을 때, 정확성을 추구할 때 세부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창의력 테스트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은하 밖 지구와 전혀 다른 행성에서 외계인을 만났을 때 그 외계인의 모습을 그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위 그림이 바로 그 그림입니다.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그림이 더 창의적이라고 보십니까? 오른쪽 그림이지요.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들이 그린 그림이 오른쪽 외계인 그림입니다.
창의적인 그림을 한번 더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창의적인 그림이 "정확"할까요? 위의 삼각형과 사각형 그림도 다시 한번 보시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왼쪽 그림은 사각형 세개이지, 삼각형은 아닙니다. 즉, 창의성과 정확성은 대체로 상쇄관계에 있습니다. 정확성을 추구하면서, 창의성을 동시에 추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정확성과 창의성이 함께 가기 어려운 이유는 창의성과 정확성이란 그 자체의 특징 때문입니다. 창의성은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것을 서로 연결하는데서 나옵니다. 그런데, 관계없는 것을 연결하면, 정확성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이를 사회에선 곧잘 "틀렸다"고 합니다. 사회가 말로는 "창의성"을 귀하게 여기지만, 실은 정확성을 더 쳐줍니다. 교육제도가 그렇고, 인재선발방식이 그렇고, 일에 대한 보상이 그렇습니다.
정확성이 창의성에 우선하는데는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사회가 유지는 돼야 하니까요. 판사가 창의적으로 법을 적용한다면, 혹은 공무원이 창의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면, 그 사회엔 큰 혼란이 일 것입니다. 문제는 사회가 그저 "정확하게 유지"만 한다고 그 사회의 생존이 보장되는게 아니란 데 있습니다. 정확하기만 해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창의성을 적절하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출발점이 "틀린 것"에 대한 포용입니다. 말로는 쉽습니다만, 지도받는 학생이 혹은 부하가 오른쪽과 왼쪽을 가끔 거꾸로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철자법이 틀린 문서 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철자법 틀린 답안지 내면, 취직하기도 힘들지요. 세상을 창조한 천재는 그런 사람들 중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
2009.6.21
댓글에 정확성에 대한 개념문제를 제기한 글이 있습니다. 피카소를 예를 들었습니다. 피카소가 창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붓과 물감을 "정확"하게 다룰 수 있는 기본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정확성과 창의성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서, 천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겠지요. 기술의 정확성을 습득하는 과정이 꽤나 긴데, 보통은 그 과정에서 사고방식마저 굳어버립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그대로 따라 "정확"하게 하는데 머무는게 보통입니다. 이 "정확성"의 벽을 넘지 못하면, 아무리 천재적 창의성을 지닌 사람이라도 그 천재성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정확성과 창의성이 상쇄관계라는 것은 학제파 화가와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아래는 대표적인 학제파 화가로 당대에 꽤나 유명했던 부게로의 그림입니다.

정확하게 그렸습니다. 실제 사물과 가능하면 똑같게 그릴려고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선생님 앵그르의 그림을 그대로 "정확하게" 따라 그렸습니다.
반면, 아래는 학제파 화가인 부게로와 서로 경멸하는 관계였던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그림입니다.

왼쪽 소년의 얼굴을 보십시오. 사람의 얼굴을 그리면서 점 두개만 달랑 찍어 놓았습니다. 소녀의 얼굴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술 그리면서 줄만 하나 주욱 그어 놓았습니다. 정확성으로 따지면 말도 안되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창의성으로 따지면, 점 두개만 달랑 찍어도 사람 얼굴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잇는 것을 보여준 그림입니다.
부게로의 기준으로 보면 인상파 화가들은 어디서 그림의 기본도 모르는 것들이 그림 그린답시고 설치는 것들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사람 얼굴 그리면서 점 두개 달랑 찍어?) 반면, 모네의 입장에서 학제파 화가들은 하나만 알았지 둘은 모르면서, 공연히 시비거는 것들입니다. (점 두개만 딱 찍어도 생생한 모습이 포착되잖아!). 만일 모네가 부게로처럼 세밀하게 하나 하나 묘사했다면, 그의 그림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겁니다.
물론, 정확성이 전혀 없으면, 창의성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무척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확성을 강조하면, 창의성이 죽어 버립니다. 정확성과 창의성은 상쇄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부적인 것과 큰 그림 중 어느 것을 보게 되는 요인에는 기분, 색, 지위, 창의성 등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긍정적 기분일 때, 파란색일 때,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창의적일 때 큰 그림을 보게 되고, 부정적 기분 (분노 제외) 일 때, 빨간색일 때, 낮은 지위에 있을 때, 정확성을 추구할 때 세부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 2009/02/08 - 파란색과 창의력, 그리고 사랑
창의력 테스트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은하 밖 지구와 전혀 다른 행성에서 외계인을 만났을 때 그 외계인의 모습을 그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위 그림이 바로 그 그림입니다.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그림이 더 창의적이라고 보십니까? 오른쪽 그림이지요.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들이 그린 그림이 오른쪽 외계인 그림입니다.
창의적인 그림을 한번 더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창의적인 그림이 "정확"할까요? 위의 삼각형과 사각형 그림도 다시 한번 보시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왼쪽 그림은 사각형 세개이지, 삼각형은 아닙니다. 즉, 창의성과 정확성은 대체로 상쇄관계에 있습니다. 정확성을 추구하면서, 창의성을 동시에 추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정확성과 창의성이 함께 가기 어려운 이유는 창의성과 정확성이란 그 자체의 특징 때문입니다. 창의성은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것을 서로 연결하는데서 나옵니다. 그런데, 관계없는 것을 연결하면, 정확성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이를 사회에선 곧잘 "틀렸다"고 합니다. 사회가 말로는 "창의성"을 귀하게 여기지만, 실은 정확성을 더 쳐줍니다. 교육제도가 그렇고, 인재선발방식이 그렇고, 일에 대한 보상이 그렇습니다.
정확성이 창의성에 우선하는데는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사회가 유지는 돼야 하니까요. 판사가 창의적으로 법을 적용한다면, 혹은 공무원이 창의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면, 그 사회엔 큰 혼란이 일 것입니다. 문제는 사회가 그저 "정확하게 유지"만 한다고 그 사회의 생존이 보장되는게 아니란 데 있습니다. 정확하기만 해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창의성을 적절하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출발점이 "틀린 것"에 대한 포용입니다. 말로는 쉽습니다만, 지도받는 학생이 혹은 부하가 오른쪽과 왼쪽을 가끔 거꾸로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철자법이 틀린 문서 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철자법 틀린 답안지 내면, 취직하기도 힘들지요. 세상을 창조한 천재는 그런 사람들 중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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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21
댓글에 정확성에 대한 개념문제를 제기한 글이 있습니다. 피카소를 예를 들었습니다. 피카소가 창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붓과 물감을 "정확"하게 다룰 수 있는 기본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정확성과 창의성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서, 천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겠지요. 기술의 정확성을 습득하는 과정이 꽤나 긴데, 보통은 그 과정에서 사고방식마저 굳어버립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그대로 따라 "정확"하게 하는데 머무는게 보통입니다. 이 "정확성"의 벽을 넘지 못하면, 아무리 천재적 창의성을 지닌 사람이라도 그 천재성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정확성과 창의성이 상쇄관계라는 것은 학제파 화가와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아래는 대표적인 학제파 화가로 당대에 꽤나 유명했던 부게로의 그림입니다.
정확하게 그렸습니다. 실제 사물과 가능하면 똑같게 그릴려고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선생님 앵그르의 그림을 그대로 "정확하게" 따라 그렸습니다.
반면, 아래는 학제파 화가인 부게로와 서로 경멸하는 관계였던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그림입니다.
왼쪽 소년의 얼굴을 보십시오. 사람의 얼굴을 그리면서 점 두개만 달랑 찍어 놓았습니다. 소녀의 얼굴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술 그리면서 줄만 하나 주욱 그어 놓았습니다. 정확성으로 따지면 말도 안되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창의성으로 따지면, 점 두개만 달랑 찍어도 사람 얼굴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잇는 것을 보여준 그림입니다.
부게로의 기준으로 보면 인상파 화가들은 어디서 그림의 기본도 모르는 것들이 그림 그린답시고 설치는 것들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사람 얼굴 그리면서 점 두개 달랑 찍어?) 반면, 모네의 입장에서 학제파 화가들은 하나만 알았지 둘은 모르면서, 공연히 시비거는 것들입니다. (점 두개만 딱 찍어도 생생한 모습이 포착되잖아!). 만일 모네가 부게로처럼 세밀하게 하나 하나 묘사했다면, 그의 그림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겁니다.
물론, 정확성이 전혀 없으면, 창의성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무척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확성을 강조하면, 창의성이 죽어 버립니다. 정확성과 창의성은 상쇄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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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글이네요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D
감사합니다.
창의성과 정확성에 대한 좋은 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 조선일보 기사도 꽤 흥미로운 내용인 것 같습니다.특히 정확성만 가지고 사회가 생존하는 것이 힘들다는데 절절히 동감합니다 ^^
네, 디스렉시아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특히, 오른쪽과 왼쪽, 빼기와 더하기 등을 혼동하는 사람들중에서 천재가 나왔다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저는 정확성과 창의성이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창의성은 '정확성을 근거로한 낡은 지식[정확성]에 반대되는 새로운 지식[창의성]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피카소가 창의적이라고 하는 것이 '그린다'라는 행위를 자기 멋대로 정의하거나 즉흥적으로 그 전과 다른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그림이라는 고정관념을 토대로 그 전의 그림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으로 그림을 그려 냈고 또 그 그림속에서 그 전과는 다른 새로운 의의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창의적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요?
즉, 정확성이라는 부분이 없다면, 창의성이라는 것도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창의성이 정확성을 모태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요.
ps. 글 쓰신 분께서 정확성이라는 말을 언급하셔서 정확성이라는 말을 약간 썼는데, 제가 말하는 정확성은 고정관념이다라는 점을 덧붙여 알려드립니다.
상쇄관계에 있다는 것이 완전한 반대의 관계는 아닐겁니다. 학제파 화가인 부게로와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의 그림은 정확성이 창의성이 상쇄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수 있습니다. 좋은 점 지적해 주셔서 본문에 추가하겠습니다.
창의성을 평가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존의 사상이나 학문과는 다른 무언가를 제시할 경우에 '개소리'한다라고 폄하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특히 아이들이 어른들 기준으로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경우 혼내는 경우도 많구요. 글의 처음 부분에서 오른쪽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창의성이 높다라고 하셨는데, 창의성을 평가하는 도구가 많이 개발되어 있는 것인가요?
"개소리"는 창의성을 이해하는 좋은 비유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창의적"이다, "위대하다"라고 칭송받는 것들이 처음엔 "개소리" 취급당한 예는 수두룩합니다. 창의성 평가하는 도구는 있지만, IQ처럼 "지수"로 나타내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정확한 창의력" 또는 "창의적인 정확성"...
수학 같은 걸 생각해보면, 수학은 Cantor가 말했듯, 엄청난 자유와 창의력을 발휘할 공간을 지녔지만, 논리적으로 정확해야 합니다. 엄격한 과학 법칙을 따르는
새로운 가상 현실을 창조하는 SF작가들의 창의성은 정확성에 기반을 두어야 하죠.
창의성과 정확성의 관계를 얘기하기 전에 그 개념을 먼저 명확히 정의하지
않으면 말 장난이 되기 쉬울 것 같습니다.
개념 정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고, 만약 창의력을 측정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창의력을 양화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네요. 창의성 지수같은 것들이 개발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 근거가 궁금하기도 하구요.
한 시대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던 화가가 그 다음 시대에는 천재로 평가받을 때, 그러한 평가에는 사후적 해석이랄까 사회문화적 혹은 역사적 맥락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사건이 창의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그 순간에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는 거지요.
어디까지가 창의적이고 어디까지가 개소리냐하는 것은 결국 그 이후에 평가가능한 것이고, 현재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얼마나 이탈해있는가라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요?
정확하다는게 바르고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바르고 확실한지는 기준이 있어야 알수 있습니다. 창의성이란 그 기준을 바꾸는 데서 나옵니다. 다른 기준으로 만들어 낸 것들은, 기존 기준으로 봤을 때 정확할 수 없겠지요.
창의성이 기존의 기준을 바꾼다는것에 동의합니다.
피카소는 아시다시피 입체파의 창시자이죠.
입체파는 말과는 달리 외려 상당히 납작한 그림들을 만들었지요.
볼륨감이라곤 없단 뜻인데요.
볼륨이 있는 현실계의 물체를 다각도로 본 면을
2차원의 납작한 화면위에 일일이 "기록"했단 뜻이 입체파란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기록물의 결과는 결국 다 해체된것들이죠.
즉 다각도에서 본것을 하나씩 화폭에 기록하기 위해
대입한 꼴이니까
입체파의 영역도 그림의 특징적 시대별로 다양하게 나뉘어지곤 합니다.
다른기준을 세운 이유로 그가 현대미술, 그중 입체파를 창시한 거장이 된거지만,
그 유명한 입체파...라는 다른기준을 만들기전
이미 그러한 경향성은 세잔느에서 발견딥니다.
세잔느의 그림에선 뭔가 피사체인 세상을 면으로 나누어 놓은듯한 붓터치를 보실수 있죠?
나누어 놓은듯한 미술 행위는 세잔느 그림의 기법만이 아니라,
세상을 3차원으로 인식하지만
2차원의 평면에 옮기는 고민을 말해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실 수 있을겁니다.
물론 그림의 기법이란것은 그런 고민에서 그렇게 탄생하는거고
그래서
기존의 미술기법과 다른 느낌을 전달하고
다르게 세상을 사유하게 하는 의미에서 창조적이라 하겠지요.^^
화폭이라는 한정된 미술공간의 세계를 뛰어넘어
인간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는데에
그런 화가들의 천재성의 의미가 있을것 같습니다.
"보는방식"이 새로워서 이후 그의 화법은
결국 20세기의 거장으로 등장했던, 위대한 화가 피카소를 낳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