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은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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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9 10:42
애쉬의 동조실험은 사회심리의 고전에 속하는 연구입니다. 사람이 집단압력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 실험으로 유명합니다. 벌거벗은게 패션이 아닌 게 너무나 뻔한 데도 주변사람들이 모두 패션이라고 우기면, 패션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벌거 벗고 다니는게 정말로 유행하게 될지도 모르죠 ^^)
아래 유툽에 올라온 동영상은 과거 애쉬가 했던 실험 일부를 재연한 겁니다.
아래 그림이 바로 애쉬 실험에서 사용한 그림입니다. 아무리 봐도 C가 왼쪽의 막대와 길이가 같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B가 혹은 A가 왼쪽 막대와 같다고 우기면, 60-70% 정도는 그 압력에 굴복하고 맙니다.
이 실험을 두고 사람들의 군중심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 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다르게 이야기 하면, 비록 그 다른 말이 틀렸을지라도, 집단압력에 굴복하는 비율이 현격하게 줄어듭니다.
즉, 9명이 B가 같다고 하고, 단 1명만이라도 A가 같다고 틀리게 말해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제대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애쉬의 실험은 집단압력을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다양성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수 있습니다. 다양한 소리가 있어야, 다수가 틀린 소리를 내더라도 소수가 다수의 오류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이는 역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행위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과거 나찌 독일이나 군국 일본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국가의 존망의 위기에 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내에 다양한 목소리를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고 있느지, 아닌지 몰랐던 것입니다. 돌이킬수 없는 순간까지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능한 인재를 외국으로 몰아내기까지 했습니다. 어찌보면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어 준것은 나찌 독일일지도 모릅니다. 독일어권의 유능한 인재들을 미국으로 몰아주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법원이 사노련 회원 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은 한국 자유민주주의가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 사례라 할수 있습니다.
합리성에는 근시적 합리와 생태적 합리가 있습니다. 근시적 합리는 간단히 말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합리라 할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적 질서를 부정하는 강령을 지닌 단체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게 바로 근시적 합리입니다.
생태적 합리는 하나만 아는게 아니라, 둘 셋도 함께 고려하는 것입니다. 바둑이나 장기 둘때 수를 내다보는 것과 같은 겁니다. 사회주의사상을 억누르게 결과적으로 그 사회에 다양성을 줄어들게 합니다. 다양성이 준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역량이 축소됨을 의미합니다. 최악의 경우, 나찌독일이나 군국일본처럼 국가가 망하는 길로 들어설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다양성은 창의성의 자양분입니다. 사회주의 사상은 창의성과 관계없지만, 사회주의 사상이 여러 사상과 함께 다양성에 기여한다면, 창의성과 관계있습니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릴수 있는 것도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도 개방돼 있고,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안보는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안보에 관한한 실질적인 안보를 추구해야 합니다. 근시적 합리로는 역설적으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가 보수정당에 표를 던지는 사회에서 사회주의 노동자연합이 국가의 존립이나 안전에 해악을 끼친다는 주장은 아무리 봐도 근시적 태도입니다.
다양성은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입니다.
선진국요? 다양성없이는 텍도 없습니다.
=(^^)=
(벌거 벗고 다니는게 정말로 유행하게 될지도 모르죠 ^^)
아래 유툽에 올라온 동영상은 과거 애쉬가 했던 실험 일부를 재연한 겁니다.
아래 그림이 바로 애쉬 실험에서 사용한 그림입니다. 아무리 봐도 C가 왼쪽의 막대와 길이가 같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B가 혹은 A가 왼쪽 막대와 같다고 우기면, 60-70% 정도는 그 압력에 굴복하고 맙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 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다르게 이야기 하면, 비록 그 다른 말이 틀렸을지라도, 집단압력에 굴복하는 비율이 현격하게 줄어듭니다.
즉, 9명이 B가 같다고 하고, 단 1명만이라도 A가 같다고 틀리게 말해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제대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애쉬의 실험은 집단압력을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다양성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수 있습니다. 다양한 소리가 있어야, 다수가 틀린 소리를 내더라도 소수가 다수의 오류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이는 역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행위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과거 나찌 독일이나 군국 일본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국가의 존망의 위기에 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내에 다양한 목소리를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고 있느지, 아닌지 몰랐던 것입니다. 돌이킬수 없는 순간까지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능한 인재를 외국으로 몰아내기까지 했습니다. 어찌보면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어 준것은 나찌 독일일지도 모릅니다. 독일어권의 유능한 인재들을 미국으로 몰아주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법원이 사노련 회원 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은 한국 자유민주주의가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 사례라 할수 있습니다.
합리성에는 근시적 합리와 생태적 합리가 있습니다. 근시적 합리는 간단히 말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합리라 할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적 질서를 부정하는 강령을 지닌 단체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게 바로 근시적 합리입니다.
생태적 합리는 하나만 아는게 아니라, 둘 셋도 함께 고려하는 것입니다. 바둑이나 장기 둘때 수를 내다보는 것과 같은 겁니다. 사회주의사상을 억누르게 결과적으로 그 사회에 다양성을 줄어들게 합니다. 다양성이 준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역량이 축소됨을 의미합니다. 최악의 경우, 나찌독일이나 군국일본처럼 국가가 망하는 길로 들어설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다양성은 창의성의 자양분입니다. 사회주의 사상은 창의성과 관계없지만, 사회주의 사상이 여러 사상과 함께 다양성에 기여한다면, 창의성과 관계있습니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릴수 있는 것도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도 개방돼 있고,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안보는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안보에 관한한 실질적인 안보를 추구해야 합니다. 근시적 합리로는 역설적으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가 보수정당에 표를 던지는 사회에서 사회주의 노동자연합이 국가의 존립이나 안전에 해악을 끼친다는 주장은 아무리 봐도 근시적 태도입니다.
다양성은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입니다.
선진국요? 다양성없이는 텍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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