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적 합리 vs. 생태적 합리
SocialBrain :
2008/08/23 14:11
"감정적"이라는 말에는 그다지 좋은 의미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이성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살다보면 감정적인게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일때도 적지 않습니다.
최후통첩게임이 아주 좋은 예입니다. 최후통첩게임은 둘이 한짝이 돼 게임을 합니다. 한사람 (A)에 일정 금액 (예를 들어 1만원)준 다음, 다른 사람 (B)과 나눠 가지라고 합니다. 나누는 금액은 A마음대로 정할수 있습니다. B는 1원을 주던, 5천원을 주던, A가 주는대로 받아야 합니다. 단, B는 거절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절하면 B는 물론 A도 한푼도 갖지 못합니다.
A의 합리적인 선택은 B에게 최소한의 금액을 주는 것이고, B의 합리적인 선택은 1원을 받더라도 거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절하면 그나마 1원이라도 챙기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실제 최후통첩게임을 실행하면, B가 1원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B가 거절해 버리거든요. 대체로 30%는 넘겨야 B가 거절하는 빈도가 줄어듭니다. B가 거절할때 뇌영상사진을 찍어보면, 뇌섬이라는 뇌의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뇌섬은 사람이 역겨울때 반응하는 부분입니다. 즉, 불공평한게 역겹다는 겁니다. 역겨우면,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에게 복수를 해주는 겁니다.
근대경제학의 원리로 본다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때문에 B는 궁극적으로 더 많은 금액을 손에 쥘수 있습니다. B가 적은 금액에 거절하면, A는 조금씩 나눠주는 금액을 높힙니다. 게임회수를 반복하면 A는 대체로 40-50%를 B에게 떼어줍니다.
감정적인게, 이성적인 것보다, 더 합리적인 셈입니다. 이런 이유로 합리성을 말할때 근시적 합리성과 생태적 합리성(ecological rationality)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최근 주목받는 신경경제학이 경제학의 합리성을 부정한다고 하지만, 실은 부정하는게 아니라, 합리성이란 개념을 확장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감정적인게,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지만, 크게 보면 역설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이나 기업의 사회책임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수 있습니다. 소외계층을 돌보는게 단기적으로는 재정에 손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와 기업의 동력이 되는 겁니다.
최근에는 감정자체가 인지의 한부분이라고 볼 정도입니다.
서울대 최무영 교수가 프레시안에 연재하던 과학이야기가 끝을 맺었습니다. 어려운 과학이야기를 쉽게 풀어 설명해, 재미있게 보던 연재물이었는데, 아쉽습니다.
마지막 회에 조금 "위험"한 비유를 했습니다. 자본주의를 암세포에 비교한 것입니다. 여러모도 적절한 비유라 할수 있습니다. 무한증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능하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는 암세포를 닮았습니다.
동시에, 모든 암세포가 무한증식하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도 자본주의는 암세포를 닮았습니다. 즉, 암세포 중에는 악성종양이 있고, 양성 종양이 있듯, 자본에도 악성과 양성이 있습니다. 악성 종양을 도려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본주의가 곧 악성 종양은 아닙니다.
미국 체니 부통령으로 대표되는 네오콘들은 악성종양이라 할수 있습니다. 우수한 군사력과 경제력, 조직력을 기반으로 악성종양처럼 무한증식을 도모하니까요. 실제로 미국사람들이 체니에게 붙여준 별명이 다스베이더입니다. 미국사람들이 보기에도 체니 일당이 하는 짓이 꼭 다스 베이더를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네오콘같은 집단이 자본주의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21세기를 19세기말 20세기초 자본가들이 본다면, 시뻘겋게 물들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사회책임투자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기업 이윤 극대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지만, 기업 이윤 극대화를 파괴하는 방식이 아닌 공존하는 방식에서 찾기 시작했다는게 의미를 둘수 있습니다.
악성종양은 분명 도려내야 합니다.
하지만, 악성종양만 도려내야 합니다.
최후통첩게임이 아주 좋은 예입니다. 최후통첩게임은 둘이 한짝이 돼 게임을 합니다. 한사람 (A)에 일정 금액 (예를 들어 1만원)준 다음, 다른 사람 (B)과 나눠 가지라고 합니다. 나누는 금액은 A마음대로 정할수 있습니다. B는 1원을 주던, 5천원을 주던, A가 주는대로 받아야 합니다. 단, B는 거절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절하면 B는 물론 A도 한푼도 갖지 못합니다.
A의 합리적인 선택은 B에게 최소한의 금액을 주는 것이고, B의 합리적인 선택은 1원을 받더라도 거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절하면 그나마 1원이라도 챙기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실제 최후통첩게임을 실행하면, B가 1원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B가 거절해 버리거든요. 대체로 30%는 넘겨야 B가 거절하는 빈도가 줄어듭니다. B가 거절할때 뇌영상사진을 찍어보면, 뇌섬이라는 뇌의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뇌섬은 사람이 역겨울때 반응하는 부분입니다. 즉, 불공평한게 역겹다는 겁니다. 역겨우면,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에게 복수를 해주는 겁니다.
근대경제학의 원리로 본다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때문에 B는 궁극적으로 더 많은 금액을 손에 쥘수 있습니다. B가 적은 금액에 거절하면, A는 조금씩 나눠주는 금액을 높힙니다. 게임회수를 반복하면 A는 대체로 40-50%를 B에게 떼어줍니다.
감정적인게, 이성적인 것보다, 더 합리적인 셈입니다. 이런 이유로 합리성을 말할때 근시적 합리성과 생태적 합리성(ecological rationality)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최근 주목받는 신경경제학이 경제학의 합리성을 부정한다고 하지만, 실은 부정하는게 아니라, 합리성이란 개념을 확장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감정적인게,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지만, 크게 보면 역설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이나 기업의 사회책임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수 있습니다. 소외계층을 돌보는게 단기적으로는 재정에 손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와 기업의 동력이 되는 겁니다.
최근에는 감정자체가 인지의 한부분이라고 볼 정도입니다.
서울대 최무영 교수가 프레시안에 연재하던 과학이야기가 끝을 맺었습니다. 어려운 과학이야기를 쉽게 풀어 설명해, 재미있게 보던 연재물이었는데, 아쉽습니다.
마지막 회에 조금 "위험"한 비유를 했습니다. 자본주의를 암세포에 비교한 것입니다. 여러모도 적절한 비유라 할수 있습니다. 무한증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능하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는 암세포를 닮았습니다.
동시에, 모든 암세포가 무한증식하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도 자본주의는 암세포를 닮았습니다. 즉, 암세포 중에는 악성종양이 있고, 양성 종양이 있듯, 자본에도 악성과 양성이 있습니다. 악성 종양을 도려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본주의가 곧 악성 종양은 아닙니다.
미국 체니 부통령으로 대표되는 네오콘들은 악성종양이라 할수 있습니다. 우수한 군사력과 경제력, 조직력을 기반으로 악성종양처럼 무한증식을 도모하니까요. 실제로 미국사람들이 체니에게 붙여준 별명이 다스베이더입니다. 미국사람들이 보기에도 체니 일당이 하는 짓이 꼭 다스 베이더를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네오콘같은 집단이 자본주의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21세기를 19세기말 20세기초 자본가들이 본다면, 시뻘겋게 물들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사회책임투자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기업 이윤 극대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지만, 기업 이윤 극대화를 파괴하는 방식이 아닌 공존하는 방식에서 찾기 시작했다는게 의미를 둘수 있습니다.
악성종양은 분명 도려내야 합니다.
하지만, 악성종양만 도려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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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그럼 강민호도......^^;;;;;
그럼, 강민호 선수가 섭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