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게 "목탁소리"라는 곳을 알게 됐습니다.
"수행에 진척이 없다고? 그래도 앉으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래 일부 내용을 인용합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것은 속된 욕심, "몸값 올리기"때문이었습니다. 명상이 제 관심을 끌었던 것도 속된 욕심, "건강에 좋고, 머리에 좋으니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는 공부도 속된 주제 "인간은 어떻게 즐거움을 얻나"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즐거움이란게 구한다고 구해지는게 아니란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쾌락의 역설이라고나 할까요.)
위 글을 읽고 저를 다시 돌아보고 있습니다.
제게 많은 것을 깨닿게 해주는 글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좀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수행에 진척이 없다고? 그래도 앉으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래 일부 내용을 인용합니다.
아침에 좌선을 하고 출근했더니
하루가 더 맑고 상쾌해 지는 것 같더라,
수행을 오래하다보니까
마음에 중심이 잡히고 그 어떤 경계에도 휘둘리지 않는 것 같더라,
금강경을 오래 독송하다 보니까
온갖 마장들이 다 없어지고 마음 내는대로 다 이루어지더라,
하는 말들은 모두가 어리석은 욕망 밖에 되지 못한다.
그것은 참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생각이 일어난다면 얼른 지켜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 생각의 흐름에 끄달리지 않을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수행을 하고 참선을 하다보면
‘나는 저 사람들보다 더 깨어있는 사람이다’거나,
‘나는 저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라는 우월한 상이 생겨난다.
이 때 깜짝 놀아 얼른 지켜보지 않는다면 그 때부터 수행은 거꾸로 간다.
정진은 없고 퇴보와 후진만이 있게 된다.
...
이 공부는 다만 순간 순간을 문제 삼는 것이지
노력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다.
수행의 결과에만 집착하는 사람들, 목적의 성취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 공부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한다.
결과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와 있음을, 이미 지금 이 순간이 과정이자 결과임을 깨닫고 누릴 뿐이다.
....
10년을 앉아 좌선을 했지만 아무런 깨달음도 없다고?
그래도 여전히 앉으라.
수행 중에 그 어떤 변화도, 경계도, 환희심도 없다고?
그것이야말로 이 수행이다.
....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생각 없이 다만 고요히 앉아 지켜보라.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것은 속된 욕심, "몸값 올리기"때문이었습니다. 명상이 제 관심을 끌었던 것도 속된 욕심, "건강에 좋고, 머리에 좋으니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는 공부도 속된 주제 "인간은 어떻게 즐거움을 얻나"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즐거움이란게 구한다고 구해지는게 아니란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쾌락의 역설이라고나 할까요.)
위 글을 읽고 저를 다시 돌아보고 있습니다.
제게 많은 것을 깨닿게 해주는 글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좀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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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입니다(이 또한 나의 좋고 싫고의 분별일까요?).
명상 수행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역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늘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애초부터 무언가 달성하려는 목표가 있지 않다면 자리에 앉는 행위 자체가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목표 없이' 앉으라니요! 정신이상자나 로보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그러니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납득이 되지 않으니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더 요원한 일일 것입니다. 수행의 맛을 '쬐금' 본 저로서는 지금 이것이 가장 큰 딜레마입니다. 자꾸 처음의 그 맛을 잊지 못해 그 맛을 보기 위한 방법론에 매달리는 거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정한 강제성을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나를 로보트처럼 만드는 것이나 그 참뜻은 그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집중수행에 참여하여 자리잡고 앉는 시간을 반강제적으로라도 늘려가야 그것이 목적 없는 습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 역시 또 하나의 목적 달성의 방편일 뿐일까요?^^ 끊임없이 뒤로, 전경(foreground)이 아닌 배경(background)으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야 나를 더 잘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볼 수 있게 되는 것 이상의 삶의 목적은 없을 것입니다.
나의 현재의 딜레마에 관해 생각해보게 해주신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의 내용은 존 카밧진이 mindfulness 명상에서 말하는 doing mode와 being mode의 구별, choiceless awareness 등과 정확히 일치하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꾸준하게 하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좋은글 읽기만 하다가 댓글 남깁니다.
개인적으로 관심분야와 겹치는 부분도 많구요.. 몰랐던 것들을 배워가는 재미에 자주 오고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공부가 되네요.. ^^
그리고.. 요즘 자기조절/집중 이라는 부분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최근 절대적 의지박약 / 작심 3분.. 이라는 상황의 심각성을 타파해 볼 요량으로 해결책들을 찾고 있습니다만,, 혹시 도움이 될만한 책이나..글이 있을까요?
뜬끔없이 글이 상담으로 빠졌네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
이런 것은 책을 읽어 해결되기 보다, 그냥 실천하는게 중요합니다. 3분만에 그만두었다가도, 다시 3분만에 또 다시 시작하면 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