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드웰과 지식사회의 언론
아는 즐거움/뉴스 보기 :
2008/05/09 13:13
티핑포인트, 블링크로 유명한 글래드웰이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조사한 5대 경영대가(Big Thinker)에 꼽혔다고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글래드웰은 기자입니다. 하지만 흔히 알고 있는 기자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가 일반적인 기자와 다른 점은 한 블로그에서 소개한 그의 인터뷰에서 잘 나타납니다.
보통 기자들은 글래드웰이 주로 하는 한가지 일 "이야기수집"만 합니다. 이야기 수집만 보면, 글래드웰은 잘 나가는 여러 기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글래드웰이 특별한 이유는 한가지 더 한다는 데 있습니다. 학술논문을 읽는다는 것입니다.
글래드웰의 특기는 수집한 이야기를 학문적 틀속에서 전달하고, 학문적 내용을 이야기로 풀어준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점을 들어, 저는 글래드웰을 21세기형 기자의 전범이라 하겠습니다.
흔히 20세기 후반이후 지구촌은 지식사회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의 많은 부분은 산업사회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언론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야기전달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가 뭐 개발했다, 올해 깜짝 실적올렸다, 버펫이 이런 저런 투자했다. 춧불문화제가 이러저러하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뭐뭐 하더라, **연구팀이 뭐뭐 개발했다. 그거 개발하는데 이런 저런 일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이야기는 굳이 기자가 없어도 전달되는 시대입니다. 아직까지는 **일보에 실려야 보다 효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긴 하지만, 그 아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포털로 보고 있습니다.
언론사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기자라는 직업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점점 그 역할이 줄어들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어떻게 해야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것일까요? 적당한 때에 그만 두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기자란 직업의 좋은 점이 젊었을 때 사회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날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빠르고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수 있지요. 문제는 다른 직업과 달리, 젊어 배운 일을 나이들어 마땅히 써먹을만한 데가 그리 많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기자의 역할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진화시키는 것입니다. 글래드웰처럼 말입니다. 지식사회라고 할때, 가장 중요한 지식의 원천은 학문입니다. 학술논문도 취재원이 되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글래드웰의 "티핑포인트"와 "블링크"는 각각 사회학과 심리학 학술논문을 취재원으로 삼은 특종이라 할수 있습니다.
요즘 "화제의 연구결과"라는 것이 언론보도의 한 분야를 차지하는 것은 이런 추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독특한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 한편 소개하는 것은 기업체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 전하는 것과 의미가 다릅니다. 논문 한편에 실린 내용을 일반화할수 없는 것도 많고, 왜곡된 정보를 전달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흡연과 파킨슨씨병과의 역관계를 소개한 기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흡연자들에게서 파킨슨씨병의 발병률이 낮다는 연구논문 한편 나왔는데, 흡연과 파킨슨씨병에 연구동향을 모르니, "흡연은 파킨슨씨병 위험을 줄일수 있다"는 내용을 무리하게 "흡연은 파킨슨씨병 예방"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한겨레가 보도한 "‘나’의 의지인가 ‘뇌’의 명령인가"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취재한 좋은 기사이긴 하지만, 분량이 너무 짧을뿐 아니라, 해당 논문에 대한 반응만 보도했지, 자유의지연구에 대한 동향을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산업면이 아닌 과학면에 실렸다는 한계도 있고요.
반면, 뉴욕타임즈의 정신분열병에 대한 기사 "Daring to think differently about schizophrenia"는 21세기 지식사회 언론보도의 동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신세대 정신분열병 치료제 개발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이 기사를 읽고 나면, 정신분열병에 대한 연구동향과 치료제 개발을 둘러싼 업계 동향을 함께 파악할수 있습니다.
더 주목할 점은 이 기사가 산업면에 실렸다는 사실입니다. 업계 동향을 전하기 위해서는 연구동향을 함께 전해야 할 만큼 지식사회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일겁니다.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글래드웰은 기자입니다. 하지만 흔히 알고 있는 기자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가 일반적인 기자와 다른 점은 한 블로그에서 소개한 그의 인터뷰에서 잘 나타납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언젠가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 시간을 뭐하며 보내냐는 질문에, ‘나는 두가지만 한다. 하나는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학, 사회학의 학술논문과 책을 읽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모든 작업은 이 두가지를 서로 잇는 일이다. 즉 ‘상식을 깨거나 반직관적인, 혹은 우리의 스키마를 부수거나 상상이나 기대를 벗어나는 깜짝놀랄만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이런 이야기들이 갖는 특징을 심리학 혹은 사회심리학적 입장에서 다시 해설해 주는 것이다.
보통 기자들은 글래드웰이 주로 하는 한가지 일 "이야기수집"만 합니다. 이야기 수집만 보면, 글래드웰은 잘 나가는 여러 기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글래드웰이 특별한 이유는 한가지 더 한다는 데 있습니다. 학술논문을 읽는다는 것입니다.
글래드웰의 특기는 수집한 이야기를 학문적 틀속에서 전달하고, 학문적 내용을 이야기로 풀어준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점을 들어, 저는 글래드웰을 21세기형 기자의 전범이라 하겠습니다.
흔히 20세기 후반이후 지구촌은 지식사회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의 많은 부분은 산업사회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언론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야기전달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가 뭐 개발했다, 올해 깜짝 실적올렸다, 버펫이 이런 저런 투자했다. 춧불문화제가 이러저러하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뭐뭐 하더라, **연구팀이 뭐뭐 개발했다. 그거 개발하는데 이런 저런 일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이야기는 굳이 기자가 없어도 전달되는 시대입니다. 아직까지는 **일보에 실려야 보다 효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긴 하지만, 그 아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포털로 보고 있습니다.
언론사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기자라는 직업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점점 그 역할이 줄어들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어떻게 해야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것일까요? 적당한 때에 그만 두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기자란 직업의 좋은 점이 젊었을 때 사회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날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빠르고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할수 있지요. 문제는 다른 직업과 달리, 젊어 배운 일을 나이들어 마땅히 써먹을만한 데가 그리 많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기자의 역할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진화시키는 것입니다. 글래드웰처럼 말입니다. 지식사회라고 할때, 가장 중요한 지식의 원천은 학문입니다. 학술논문도 취재원이 되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글래드웰의 "티핑포인트"와 "블링크"는 각각 사회학과 심리학 학술논문을 취재원으로 삼은 특종이라 할수 있습니다.
요즘 "화제의 연구결과"라는 것이 언론보도의 한 분야를 차지하는 것은 이런 추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독특한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 한편 소개하는 것은 기업체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 전하는 것과 의미가 다릅니다. 논문 한편에 실린 내용을 일반화할수 없는 것도 많고, 왜곡된 정보를 전달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흡연과 파킨슨씨병과의 역관계를 소개한 기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흡연자들에게서 파킨슨씨병의 발병률이 낮다는 연구논문 한편 나왔는데, 흡연과 파킨슨씨병에 연구동향을 모르니, "흡연은 파킨슨씨병 위험을 줄일수 있다"는 내용을 무리하게 "흡연은 파킨슨씨병 예방"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한겨레가 보도한 "‘나’의 의지인가 ‘뇌’의 명령인가"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취재한 좋은 기사이긴 하지만, 분량이 너무 짧을뿐 아니라, 해당 논문에 대한 반응만 보도했지, 자유의지연구에 대한 동향을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산업면이 아닌 과학면에 실렸다는 한계도 있고요.
반면, 뉴욕타임즈의 정신분열병에 대한 기사 "Daring to think differently about schizophrenia"는 21세기 지식사회 언론보도의 동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신세대 정신분열병 치료제 개발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이 기사를 읽고 나면, 정신분열병에 대한 연구동향과 치료제 개발을 둘러싼 업계 동향을 함께 파악할수 있습니다.
더 주목할 점은 이 기사가 산업면에 실렸다는 사실입니다. 업계 동향을 전하기 위해서는 연구동향을 함께 전해야 할 만큼 지식사회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일겁니다.
'아는 즐거움 > 뉴스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미관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7) | 2008/05/12 |
|---|---|
| 존경받는 경쟁을 할 때입니다 (2) | 2008/05/11 |
| 글래드웰과 지식사회의 언론 (0) | 2008/05/09 |
| 선거와 감성, 정치와 광우병 (2) | 2008/05/06 |
| 대운하 할 돈으로 MIT급 대학 5개를 만들자 (0) | 2008/04/13 |
| 진보신당은 왜 실패했을까? (4) | 2008/04/13 |
|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