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지평 (BBC Horizon)은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지적모험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금이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아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여지고 있지만, 몇백년전만해도 지구는 평평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평선에 다가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한다거나,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평선 너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이 않더라도, 체제안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지평을 넓히는 일은 그만큼 힘들고 벅찬 일입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지평을 넓히는 일에 목숨까지 걸지는 않더라도, 적지않은 고난을 감내해야 합니다. BBC지평은 언론의 고유한 사명 중 하나인 지평을 넓히는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프로그램중 하나입니다.
몇주전엔 BBC지평의 다큐멘터리 "인간적인 사형제도를 찾아"를 소개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어떤 분이 대단히 흥분해서 댓글을 올렸습니다. "알몸 졸업식 뒤풀이"에 대한 글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화를 내셨습니다. 사실 제 글의 요지는 사람에 따라 도덕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었고, 알몸 졸업식도 보는 사람에 따라 부도덕하게 느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글을 정확하게 읽으셨고, 흥분한 댓글의 오류를 저 대신 반박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BBC지평의 다큐멘타리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글입니다. 이 부분 역시 아주 민감한 사안이 될수 있습니다. 종교를 신경과학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있는데, 심지어 부인이 이혼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역시 심한 인신공격에 시달리고 있고요.
BBC지평에서 소개한 내용은 신경신학에 대한 내용입니다. 어딘가 잘 안맞는다는 느낌이 드실겁니다. 신경과학과 신학을 결합했기 때문입니다. 종교도 사람의 사회활동의 일부이고, 뇌의 작용범위안에 든다면, 종교현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영어가 되시는 분들에 유튜브에 올라온 BBC지평을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God on the Brain 1/5, 2/5, 3/5, 4/5, 5/5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신비적 종교체험은 뇌의 특정한 작용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뇌는 각 부분별로 기능이 나뉘어 있고,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머리 뒤쪽에 있는 후두엽란 부위는 시각정보를 처리하는데, 이부분이 잘못되면, 사물을 볼수 없습니다. 후두엽 앞에 있는 두정엽 (Parietal Lobe)이란 부분은 시각정보를 비롯한 각종 감각정보를 종합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이부분이 잘못되면 사물을 볼수는 있어도 그게 뭔지 알수 없습니다. 두정엽 아래에 있는 측두엽은 청각정보를 처리합니다. 측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죠.
물론 두정엽과 측두엽은 이외에도 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종교적 신념도 두정엽과 측두엽이 관여하는 여러가지 기능 중 하나입니다. 측두엽이 지나치게 많이 작동하면 초월적 존재를 느끼게 되고, 두정엽이 작동하지 않으면 자아의 존재감이 사라집니다.
신경과학의 발달이 그러했듯, 종교적 현상에 대한 신경과학자들의 탐구도 뇌의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서 시작됐습니다.
간질은 뇌의 특정부위가 과도하게 작동할 때 생기는데, 측두엽이 과도하게 작동하면 측두엽간질이 됩니다. 측두엽간질 환자가 종교현상을 탐구하는데 관심을 끈 이유는 이들이 종교적 환상을 체험하기 때문이지요. 과학자들은 측두엽과 종교적 환상 사이에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유명한 신경과학자인 라마찬드란 박사가 간단한 실험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성과 관련된 단어를 보면 흥분합니다. 그런데, 측두엽 간질환자들은 성과 관련된 단어에 대해서는 무덤덤하고, 신이나 성경과 같은 종교적 단어을 보면 흥분합니다. 즉, 측두엽간질 환자는 종교적 금욕을 통해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쯤되면 측두엽간질은 병이라기 보다 특수한 능력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많은 천재들이 정신분열이나 자폐환자였듯 말입니다.)
마이클 퍼싱어 (Michael Persinger) 박사는 더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헬멧에 약한 전자기장을 발생시킬 수 있는 장치를 답니다. 피험자는 그 헬멧을 쓰고 방에 혼자 들어갑니다. 실험자는 임의로 오른쪽 혹은 양쪽 측두엽에 전자기장을 발생시킵니다. 피험자의 80%가 전자기장을 측두엽에 발생시켰을 때 신비한 존재감이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퍼싱어 박사는 이런 종교적 체험이 단지 제도권 종교에만 국한된게 아니라고 합니다. 뇌가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종교적 체험이 될수 있고, 유령에 대한 공포가 될수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퍼싱어 박사는 밤마다 유령 공포에 시달리는 한 소녀를 방문했습니다. 그 소녀의 방에서 퍼싱어 박사가 실험에 사용한 것과 유사한 전자기장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소녀의 머리 맡에 있는 전자시계에서 유사한 전자기장을 찾았고, 그 시계를 치우자, 그 소녀는 더 이상 유령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전자기장에 대한 민감도가 다른데, 그 소녀는 아주 예민한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실제로 퍼싱어 박사의 실험에서 20%는 신비한 체험을 하지 않습니다. 즉, 측두엽이 전자기에 둔감한 사람은 종교적 체험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퍼싱어 박사는 유명한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도 실험에 초대했습니다. 역시 도킨스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무신론자인 이유도 다 그의 두뇌에 있었던 것입니다.
측두엽만이 종교적 체험의 전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초월적 존재 앞에 개인이라는 자아감이 미미해져야 하니까요. 이를 위해 BBC는 깊은 명상단계에 몰입했을 때의 뇌를 촬영했습니다. 두정엽의 활동이 미미해지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두정엽은 몸에 들어오는 감각을 종합하는 곳인데, 자아감을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 내가 팔을 움직였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을 때 그게 나의 움직임인지, 나의 느낌인지 알게 해주는 곳입니다. 즉, 두정엽의 활동이 미미해진다는 것은 자아감이 많이 줄어든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불교의 명상 단계를 높여갈수록 자아를 확대해 갑니다. 개인의 몸에 대한 자각에서, 가족, 친구, 이웃, 심지어 원수에게 까지 말입니다. 궁극적으로 자아를 미물 및 자연에까지 확장하는데, 결국 이제 자아를 버리는 과정이지요. 그게 바로 두정엽의 활동과 관계있었던 겁니다.
종합하면 종교적 체험은 측두엽이 활성화하면서 초월적 존재를 느끼면서, 동시에 두정엽의 활동이 줄면서 자아감이 약해지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왜 종교적 체험을 하는 "능력"이 생겼을까요? BBC는 종교를 갖는 것이 진화와 생존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갖는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도움이 됩니다. 사회를 유지하는데도 종교가 아주 큰 역할을 하고요. 건강하게 오래 살면 자손이 많고, 그만큼, 그런 유전자가 널리 퍼지는 것이지요. (진화론을 공격하는 일부 기독교도와 회교도들도 결국 진화의 산물이었군요.^^;;;) 물론 과도한 종교적 믿음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를 파멸로 이끌지만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류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균형잡힌 태도가 필요한 것이고,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의 유전자도 남아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현대 신경과학은 초월적 존재가 전적으로 사람의 두뇌작용의 결과라고 단정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과학도 자연현상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과학이란 현상에 대한 근거있는 해석입니다. 그 해석은 오류가능성이 있는 것이고요. 초월적 존재에 오류가능성은 없습니다. 따라서 초월적 존재 자체는 과학의 탐구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과학의 탐구대상은 인간과 인간사회가 보여주는 종교현상입니다.
종교현상 자체는 초월적 존재 자체가 아닙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혼동하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종교현상에 대해 말하는데 초월적 존재를 부정한다고 흥분합니다.
종교현상이 뇌의 작용이란 점은 분명합니다. 뇌에 대한 탐구가 종교현상을 설명하는 것이지 초월적 존재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 역시 중요합니다.
신께서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 사람의 뇌를 이런 식으로 진화하도록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라마찬드란 박사가 마지막에 던진 말입니다. 요는 과학을 수용하는 것이 종교적 신념을 버리는게 아니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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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결론부분에서 물론 해석하셨지만, 어찌되었건 제목이 조금 도발적입니다.
우리눈에 보이는 사물(ex 나무)이 우리 뇌에서 시각적으로 처리된다고 해서, '나무는 우리 두뇌 안에 존재하는가?'라고 말하지는 않죠.
결론부분에서 준엄하게 지적하고 계신 '종교인들의 혼동과 흥분'이 '도발적' 글제목과 무관치는 않게 보입니다.
과학을 수용하는 것이 종교적 신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 좋아합니다. 문제는 '과학'을 무엇이라고 할 것인지, 과학을 '수용'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가 그리 clear하지 않은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뭘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거죠.^^ 혹 과학관이라든지 하시는 게 있으시면 추후에 좋은 글로 포스팅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재미난 글 감사합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God on the Brain을 해석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제목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일부 기독교도와 회교도들의 과학(특히 진화론)에 대한 소모적인 공격때문이라고도 할수 있겠습니다. ^^;. 재미있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종교뿐 아니라 일상을 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게 사실은 뇌의 작용일뿐 객관적인 진실은 아니지요. 우리 모두가 뇌가 일으키는 환상속에서 각자가 각자의 삶을 사는게지요.
시시한 관념론을 저리가라
객관적 '진실'까지는 모르겠고, 적어도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은 지나쳐 보이네요.
그렇게 각자의 환상속에 사는 우리가 신기하게도 소통을 하며 협력을 하네요. 어떤 안정적인 기준점(ex 외재하는 불변적 사실)이 없이 이런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극단적 절대주의만큼이나 극단적 상대주의도 위험합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신의 영역에 굳이 인간의 지식을 들이대겠다는 사람들(창조과학, 지적설계)이 있다는 것이죠.
비밀댓글 입니다